[미국치과의사] (3) 뼛속까지 문과생, 미국 치과의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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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3) 뼛속까지 문과생, 미국 치과의사 되다!
  • 박진호 원장
  • 승인 2019.03.05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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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③
▲ 미국 독립전쟁 때 처음 독립을 알린 작은 종(liberty Bell).
내가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된 것은 정말 예정에 없던 일생일대 의외의 사건이다.

1987년, 19살의 나이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왔다. 당시, 대학에 입학해 한 학기를 겨우 마친 시점에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한국을 떠났다. 여느 이민자들처럼 빈손으로 온지라 살벌한 빈민가에 터를 잡았고, 한동안 그곳에서 죽어라고 일만했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안 되겠다 싶어 느지막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야간 근무를 끝내고, 아침에 집과 가까운 대학교에서(Temple University) 교양과목 한두 개를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의 짧은 대학생활이었지만, 당시 나는 ‘국문과’ 학생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기가 막힌 물리 교수님 한 분을 만나면서… 뼛속까지 문과생이던 내가 이과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그래… 물리가 내 살 길이다’ 생각했는데… 어쩌다 의과시험을 치고, 제법 잘 나온 점수를 무시하며 물리 공부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아쉬워하는 어머니 소원 한번 풀어드리고자 의사가 되기로 하고, 그래서 결국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과가 위치한 이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州로 필라델피아와 가까운 작은 시골마을이다. 마차 타던 시절에 만들어진 작은 마을로 ‘Sellersville’이란 이름의 동네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전쟁 때, 처음 독립을 알린 작은 종(Liberty Bell)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침략군이던 영국군이 이 종을 부수려고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때 아무도 모르게 종이 피난 와 있던 동네가 바로 내 치과가 있는 ‘Sellersville’이다.

필라델피아는 ‘대지’로 유명한 여류작가 Pearl Bucks(펄벅)의 생가와 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Pearl Bucks은 한국 전쟁 때 한국 고아를 돌본 것으로도 유명한데,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나는 이 펄벅재단(Pearl S. Buck’s Foundation, Perkasie, PA)에 우리 치과 이름으로 줄 곳 후원을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한국에 왔던 초창기 선교사 중 아펜젤러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다. 의외로 한국과 관련된 역사적 유서가 많은 곳이다. 

나는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반드시 ‘믿음’이 쌓인다는 것을 이곳에 살면서 깨달았다. ‘인지상정’이란 말은 이곳에서도 진리로 통한다.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만해도 동양인인 나를 신기한 듯 낯설게 쳐다봤다. 벌써 미국 땅을 밟은지 30년이 훌쩍 넘었고, 치과를 시작한지도 20년이나 되었다. 이제는 동네 슈퍼나 주유소에서는 늘 아는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어려서부터 봐왔던 아이들이 벌써 커서 결혼을 하고, 그의 아이들이 다시 우리 치과에 올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미국 분들 중에도 의외로 ‘인상’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 유전자 덕에 ‘부처님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는데 푸근한 인상이 미국 분들에게도 편하게 어필한 모양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내 행동이 한국에 대한 Impression에 직접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레 언행에 신경을 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치과잡지 ‘덴포라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단 깔린 멍석이니 치과와 관련된 이야기의 ‘썰’을 원 없이 한번 풀어 보고자 한다. 이야기가 바닥날 때까지 말이다. 비단 치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 10대에 미국에 와서 이젠 중년의 문턱에 서 있는 나의 이야기? 가끔 미국 분들에게서 느끼는, 특히 동부에 사는 가장 보편적인 백인들 이야기? 그 속에 같이 사는 소수 민족 이야기? 치과에서 독특하게 일어나는 비즈니스 이야기? 이곳에 사는 한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 등등.

어릴 때 꿈은 글쓰기였고 그래서 한국에서 택했던 학과도 ‘국문과’였다. 글 쓰는 것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겐 정말 소중한 선물이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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