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5) 천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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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5) 천국의 비밀
  • 박진호 원장
  • 승인 2019.05.02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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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내가 처음 치과를 개업했을 때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람은 주변의 Social worker들이다. 주로 장애인을 볼보는 분들이다. 내 치과 주위엔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Group home이 다수 있고, 치과 치료가 필요할 때 이 Social worker들이 그들을 데려 온다.
 
개원 초기였으니 환자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반갑게 이들을 맞이했고 즐겁게 치료를 했다. 치료하는 우리를 보면서 Social worker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그들이 돌보는 장애인뿐 아니라 그 가족들, 나중엔 Social worker들의 가족까지 무슨 감자 뿌리처럼 줄줄이 우리 치과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우리 병원은 그렇게 시작했다. 20년 전에.
 
사실 장애우를 대하는 것은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한데, 개인적으로는 그 전에 조금의 축적된 경험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유일하게 참여한 봉사활동이 있다면 필라델피아에 있는 ‘밀알’단체였다.(한국에도 본부가 있다.) 봉사활동을 통해 수화도 배우고 장애우들과 친분도 쌓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도 결과적으로는 이 단체와의 인연이 그 시작이었다. 나의 절친, 지금도 여전히 절친인 시각장애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이 친구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이 중매쟁이 친구는 지금은 회계사가 되어 워싱턴에 있는 National Cathedral의 책임 회계사가 되어 있다.) 이렇듯 장애우들과의 교류는 제법 오래되었다. 그런 경험이 미국 경쟁사회에 첫발을 디딘 나에게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많은 장애우들이 우리 치과를 거쳐 가고,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중증장애를 가진 여자아이를 환자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 아이를 치료하기 전에 그녀의 가족들을 먼저 보기 시작했었다. 만족한 그분들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집에 장애를 가진 조카가 있는데 좀 봐줄 수 있겠냐고. 우린 장애인을 치료하는 데는 나름 베테랑이었다. 미소로 화답했고, 그 조카를 데리고 왔다. 이름이 Dorothy L.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20년 넘게 해결하지 못했던 치아 문제를 우리 치과에서 꾸준히 끈기를 가지고 시작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

그런데, 이 환자분 가족들 Last Name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내가 있는 Bucks County에 로컬 슈퍼마켓 체인이 하나 있는데 그 슈퍼마켓 이름(LanXXXXs)과 이 환자 분들 성이 같다. Dorothy를 데리고 온 숙모라는 분에게 살짝 물어보니 이 가족들이 그 슈퍼마켓 체인의 주인이란다. 형제 다섯이 운영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한다.

오~ 이럴 수가. 거의 백만장자급 사람들을 내가 매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소박하기 그지없고 마음은 모두 천사 같았다. 형제 다섯 분 중에 한 명의 부인이 한국 분이고 늘 반갑게 인사한다. 그 분들이 올 때마다 그들 이름으로 만든 감자칩을 잔뜩 들고 오고, 우린 감사히 받아먹는다.

최근 들어 새 환자들의 예약 전화가 많이 왔고, 이들과 이야기를 좀 하다 보니 하나 같이 그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Dorothy를 돌본 우리가 소문이 나버린 것이다. 딱히 치과 주치의가 없던 분들이 우리 치과로 마구 오기 시작한다. 그 슈퍼 체인이 한 5~6개 되나? 한 지점에 직원이 적어도 몇 십 명씩은 될 텐데… 대박.
 
이미 난 너무 간절하게 체험한 사실이지만, 장애인을 돌본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천국에 들어갈 0순위는 이 땅에서의 장애인들이라고 성서는 기록한다. 천사들은 언제나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런 모습이고, 우린 언제나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이미 드러난 천국의 비밀을 우린 매일 지나친다. 하지만  작은 이에게 물 한잔 건네는 것은 매일의 Discipline이 필요하다. 지금도 어디서나 장애인이나 그 식구들에게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앞으로 받을 복이 많겠구나… 하고.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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