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8) 익숙함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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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8) 익숙함 버리기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 승인 2020.01.02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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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⑧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누가 봐도 정말 멋있던 잘 나가는 사업가를 병실에서 본 적이 있다. 아프고 나서 몰골이 말이 아니게 변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처량하게 보였던 것은 입고 있던 환자복 때문이었다. 늘 말끔한 수트 차림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로고와 명칭이 세로글씨로 줄잡아 열댓 개는 쓰여 있는 촌스러운 옷으로, 말 그대로 환자복이 그 사람을 환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주위를 돌아보니 입원실의 환자들 모두 다 비슷해 보였다. 외래에서는 나름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던 환자도 환자복을 입은 입원실에서는 감히 소리를 지르기 어렵다.

수십 년간 치과에서 환자를 진료해본 의사라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파노라마 사진만 보면 그 환자의 과거가 보인다는 것 말이다. 환자의 얼굴보다 파노라마 사진을 봐야 그 사람이 더 잘 기억난다. 물론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현 치아 상태는 분명 그 사람의 지난 과거의 성장과정, 생활습관, 경제력, 전신건강, 건강지수 등을 대략 말해 준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이다”란 말은 이 상황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질병 상태에 있는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는, 자신이 선택한 여러 가지 습관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습관에서부터 수면습관, 음주습관, 흡연습관, 반복되는 스트레스 등의 생활습관이 지금의 건강상태를 만들었고 그것을 조절하지 않는 이상 나빠진 상태를 회복시키기란 쉽지 않다.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이미 그 상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칫솔질을 가르쳐 주고, 치실과 치간 칫솔 사용법을 늘 알려주지만 정말 맘에 들게 제대로 하는 환자는 드물다. 생각해 보라. 칫솔질은 세 살 때부터 하던 거 아닌가. 나이든 성인한테 젓가락질 가르쳐 주는 거랑 비슷한 거다. 젓가락질은 잘 못해도 밥은 잘 먹을 수 있지만 칫솔질을 못하면 이는 썩고 잇몸은 망가진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잘 못 고치는 것은 그만큼 익숙해져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늘 뒷목이 아파서 병원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내 습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 반복될 것이다. 병원에서는 늘 자세를 바로 하고 스트레칭 해주고 한 자세로 너무 오래 있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치과 체어에서 바른 자세로 진료하기란 익숙하지 않고 틈날 때 마다 스트레칭하고 자세를 자주 바꿔가면서 진료하는 것도 나만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쉽지가 않다. 그 병원에서 나라는 환자는 내가 늘 잔소리하는 칫솔질 못하는 환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익숙함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직장과 집이 대표적이다. 질병을 유발시킨 환경 자체에 변화를 줘야 한다. 심한 경우에 장기 입원을 하고 요양을 해야 하는 이유는 케어를 필요로 하는 것 말고도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분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장과 집을 떠날 수 없다면 그 장소에 어떤 변화를 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라
익숙함은 사람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현재 익숙해져 있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 겪고 있는 질병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입안에 생기는 만성질환도 익숙해지면 통증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저절로 이가 빠질 정도인데도 환자는 그때까지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로는 익숙함에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환자를 종종 본다. 아니 어쩌면 거짓말이 아니라 너무 그 상태에 익숙해서 질병이 자기화(自己化)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병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봐야 한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과 사복을 입은 군인은 군기가 다르다. 나이든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영락없는 군바리(?)가 되고 만다. 가운을 입고 있을 때의 의사와 평상복을 입었을 때의 의사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환자복을 입은 환자는 환자스러워진다. 치과에서의 환자복은 파노라마 사진, 임상사진 등이다. 사진이 걸려있는 곳에 누워있는 환자는 의사의 말에 귀 기울일 자세가 기본적으로 되어 있다. 이때가 바로 환자를 익숙함, 자기화에서 의사가 깨워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바로 의사도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똑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습관적으로 익숙하게 이야기한다. 개개 환자의 반응을 체크하기 보다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임상적 증상과 의사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한다. 이런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의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늘 임상강좌와 학회 등을 다니며 최신 의술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단순히 보수교육점수에 연연해서가 아니다. 바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지금 익숙해져 있는 치료방법은 이미 퇴물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뒤처지고 심지어 잘못된 진단과 치료를 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과 어른에게 설명하는 것이 달라야 하듯이 이를 더 세분화시킬 필요가 있다. 남녀노소는 기본이고, 직업, 건강지수, 전신건강상태, 경제력, 가족관계 등의 환자 정보를 최대한 숙지하고 거기에 맞는 설명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의 질환을 가지게 된 원인을 단순히 게으름이나 자기관리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자기화 되어버린 그 사람의 독특한 생활습관을 찾아주는 것까지가 모두 의사의 몫이다. 의료의 패러다임은 치료에서 관리로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치료에 머무는 것이 아닌 생긴 질병과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질환에 대한 총체적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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