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10) 바이러스 담론(談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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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10) 바이러스 담론(談論)
  • 김동석원장(춘천 예치과)
  • 승인 2020.03.05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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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담론(談論)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몇 년 전에 의료봉사 차 아프리카에 다녀온 적이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의 유행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지만 해당 국가는 감염자가 나왔다는 보고가 없어서 큰 걱정을 하지 않고 현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막근처를 지날 때였다. 길가에 낙타 두 마리가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같이 간 사람들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서둘러 그 자릴 피해 도망갔다. 낙타가 바이러스의 매개체라는 보고를 수없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좀처럼 보기 힘든 낙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을 텐데 말이다. 사람과 짐을 사막에서 실어 날랐는지 힘겨워 하는 낙타의 모습을 보니 불쌍했다. 바이러스가 처음에는 박쥐에서 시작되어 옮겨진 거 같다고 하니 낙타는 억울할 만하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놈의 박쥐가 문제라고 한다. 배트맨이 만들어 놓은 긍정적 이미지가 이제는 바이러스 때문에 박쥐도 혐오 동물이 되어버렸다. 박쥐도 불쌍하고 억울하긴 매 한가지다. 박쥐는 한 번도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려고 의도한 적이 없다. 인간의 삶의 터전과 잘 겹치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이 그 박쥐를 찾아서 굳이 그 바이러스와 접촉한 것이다.
사스, 메르스, 지카, 코로나 등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바이러스들. 바이러스는 사실 오랜 전부터 있어왔던 것인데 최근 왜 더 무서워진 걸까? 바로, 나날이 새로워지는 변종 바이러스들, 그리고 전에 없었던 강한 전염력과 치명적인 증상들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공포는 예전에는 없었던 SNS라는 강력한 매체를 통해서 멀리멀리 퍼진다. 직접 들었으면 의심해 보거나 믿지 않았을 이야기들이 눈덩이처럼 과장, 왜곡되어 걷잡을 수 없는 ‘카오스’상태가 된다. 바이러스 하나에 이런 혼돈의 카오스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어서 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간이 쳐 놓은 그 촘촘한 방역 망을 바이러스는 잘도 빠져나간다. 결국 무지가 곧 두려움의 원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원하는 것?
한강에 괴물이 출현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한 소녀를 그 긴 꼬리로 휘감아 납치했다. 가족들은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렀다. 하지만 소녀는 밤에 전화로 자신의 생존을 알리고, 아빠는 딸이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어눌한 아빠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대신 아빠를 바이러스 보균자로 간주하고 온갖 검사를 위해 강제 입원시킨다. 결국 미 군의관들이 하는 말들 중에 아빠는 이 말을 알아듣는다. “노우, 바이러스”. 자신에게 바이러스가 없다고 알아들은 아빠는 필사적으로 탈출해서 납치된 딸을 찾으러 나선다.

대부분 알고계신 영화 ‘괴물’의 내용 중 일부다. 영화 ‘기생충’으로 최근 아카데미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최대 히트작으로도 꼽히는 이 영화는 바이러스가 퍼질 때 마다 내 머리에 자주 오버랩 된다. 괴물이 퍼뜨렸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바이러스에 모두들 두려워하고 미디어는 연일 바이러스에 대한 특종을 보도한다. 괴물과 조금이라도 접촉했을 만한 사람이나 또 그 사람과 함께한 모든 사람을 보균자로 간주하고 감금한다. 방역당국의 허술함과 정보의 범람, 과민반응, 카오스 등등 모든 것이 현실과 많이 닮아있다. 한때 전염병은 정복되었다고 여겼을 정도로 현대의학은 오만했지만 이제는 바이러스의 조롱에 여지없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의 대처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공세를 높여 온갖 정보와 해석을 뱉어내고 이전의 바이러스에 대한 세계적 수많은 피해마저 모두 소환시켜 대중을 동요하게 만든다. 결국 ‘원시적’공포에 모두 시달리게 된다. 자기 동네에 의심환자가 오는 걸 결사반대하고, 의료진의 자녀들마저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게 하는 주장도 나온다. 히스테리에 가까운 이런 반응은 합리적 사고, 과학, 친절함, 이웃에 대한 배려 등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적이고 사회적 기초를 뒤 흔든다. 혹시 바이러스는 몇몇 사람의 목숨보다는 사회전반의 붕괴마저 노리는 더 무서운 놈들이 아닐까도 싶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면역사회
의사와 병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국민건강을 위한 진정한 방향성을 이야기해도 결국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 아니냐며 폄하한다. 위대한 의료적 성과와 사회적 실적은 폄하되고 댓글도 잘 달리지 않지만, 작은 의료적 문제와 사고는 늘 과장되어 보도되고 수많은 지탄의 댓글이 도배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모두 병에 걸리면 무조건 병원에 의존한다. 최신 장비,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더 의존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과잉의 고가 장비와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병원은 과잉진료를 묵인하기까지 한다.
결국 첨단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점점 더 몰릴 수밖에 없고 그 환자들을 감당하기 위한 의료진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진료의 질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과도한 환자의 밀집과 의료진의 스트레스는 바이러스에게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어느 병원의 시설과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바로 그런 시스템이 적절하게 잘 배치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느냐가 중요한데 바이러스에게는 여전히 빈틈이 많은 구조인 것이다.

이제는 백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대중은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완벽한 백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에도 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은 국민 면역력이 관건이다. 하지만 한 나라 국민의 면역력은 평상시에 수치화시키거나 서열화 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예산을 집행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자본의 재배치와 사회적 구조의 개혁, 또한 국민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의식주의 개선은 지속되어야 한다. 때마다 ‘마스크를 꼭 쓰고 30초 이상 손을 씻으라’는 캠페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치맥의 나라, 야식문화와 배달의 나라를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온갖 야식, 불면증을 부르는 음료들, 야간작업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의 구조적 문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의료인의 고뇌, 의료기관의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의료의 불평등 등에 대한 우리의 현실과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담론(談論)을 만들어낼 줄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런 담론이 자연스럽게 수면으로 나와야 온 국민의 면역력 증진을 위한 체계적 공중보건 시스템, 사회 의료적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자가 면역력’이 최선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면역력만을 높이기에는 개인이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은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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