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23) 금기가 없는 도시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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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23) 금기가 없는 도시 암스테르담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0.07.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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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푸근한 느낌을 주는 중년부인 같은 도시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푸근한 느낌을 주는 중년부인 같은 도시입니다

파리가 화사한 새색시 같은 화려한 도시라면 암스테르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푸근한 느낌을 주는 중년부인 같은 도시입니다. 시민들은 개방적이고 친절하며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나 편견이 없습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와 친절함은 아마도 유럽의 무역 중심도시로서 발전해오면서 시민들이 터득한 사회문화적 산물이라고 생각됩니다. 

네덜란드는 1581년 당시 유럽의 최강국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하여 독립한 후 17세기에는 대서양 무역을 장악하고 동인도 회사를 중심으로 자기 나라 면적보다 훨씬 큰 식민지를 해외 건설한 강인한 민족입니다. 지금도 유럽 중계무역의 중심국가이자 농산물을 수출하는 첨단 농업국가로서 강소국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하면 사람들은 마약과 매춘이 합법화된 도시라는 점을 언급합니다. 중심가 바로 뒷길이 홍등가이고 마리화나가 자유롭게 판매 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coffee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곳은 다방이 아니고 마리화나 카페입니다.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유럽국가로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마약과 매춘을 허용하는 이유를 네덜란드 교수에게 물어보니 허용한 것이 아니고 단지 금지하지 않을 뿐이라고 합니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맥락은 다릅니다. 현재 홍등가 지역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나 표현도 금지하지 않는 자유 해방구 같은 지역을 조성하자는 것이 처음의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마약과 매춘도 허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네덜란드 사람다운 발상입니다. 마약과 매춘이 허용되었다고 해서 암스테르담의 성범죄율이 높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사람은 강요에 의해서는 변화되지 않고 스스로 변화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진정으로 변화된다는 교육학자 칼 로저스의 말이 생각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특이한 것은 많은 집들의 유리창에 커튼이 없습니다. 부엌과 거실이 훤히 보이는 집이 많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숨기는 것이 없고 모든 면에서 떳떳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커튼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커튼을 하면 숨길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실 자신과 타인에게 떳떳할 때만이 진정으로 자유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민들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는 이러한 떳떳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덜란드가 사회적 갈등 없이 강소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이러한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투명한 사회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변변한 자원도 없이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은 네덜란드와 여러모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국가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네덜란드의 국가생존 전략과 국가시스템은 우리가 관심 있게 살펴볼 사항입니다. 조선말 급격한 세계정세 변화에 무지하고 명분에 집착한 척사위정론자 때문에 개항이 늦어 결국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였듯이 작금의 한국 상황 역시 조선 말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895년 을미년은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을미사변이 일어난 해입니다. 올해 을미년이야말로 120년전 을미사변을 역사의 반면 교사로 삼아 한국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2015년 1월 26일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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