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26) 코로나19 사태와 공동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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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26) 코로나19 사태와 공동체주의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0.11.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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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한국사회에는 강력한 공동체주의 전통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는 강력한 공동체주의 전통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Pandemic 사태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의 사망자와 확진자 수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눈길 끄는 것은 미국의 코로나 19 사망자의 70%가 저소득층 흑인이라는 점입니다.

치과대학 시절 병리학 책을 보면 종종 특정 질병의 경우 호발 연령과 호발 인종이 언급된 것이 기억이 납니다. 치과대학 학생 시절에는 병리학 공부를 하면서 특정 질병에 잘 걸리는 인종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년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치과대학 방문교수 시절 미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역학자, 사회학자, 의학자들이 모여서 인종과 질병 발생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고 그 결과를 기술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보고서의 결론은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같은 질병을 제외하고는 인종과 질병 발생의 관련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 교수들과 세미나 시간에 그 보고서 결론을 언급하면서 미국이 국가 역학연구 시 인종 변수를 조사하는 이유를 역학전공 교수에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역학 교수는 역학적 목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서 특정 인종의 특정 질병에 유병률 발생을 모니터링하여 문제 발생 시 더 잘 관리해 주기 위한 국가 통합적인 목적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미국의 중요 정책목표가 인종 간의 통합이란 점을 고려했을 때,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매우 지혜롭다는 생각과 미국은 의료선진국일 뿐만 아니라 정치선진국이라는 생각 또한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최고 최대의 질병관리본부(CDC: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있는 미국의 코로나 19 감염 사태 대응을 보면서 실망과 함께 여러 의문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CDC를 벤치마킹하여 후발 주자로 뒤늦게 설립된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잘 대처하고 있는데 정작 엄청난 예산과 인력 그리고 시설을 보유한 미국의 CDC는 왜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세계 최고의 사망률과 이환율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러한 의문은 오바마 대통령의 에볼라 바이러스 대처 방법과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19 대처 방법을 비교하는 지난 토요일 TV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풀렸습니다. 결론은 아무리 좋은 방역 시스템이 있어도 지도자가 잘못 판단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입니다.

전염병 방역의 제일 원칙은 신속한 의사 결정과 대처임에도 불구하고 재선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조기 대응을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여 바이러스 확산을 방치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1970년대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남해안 지역에서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되었던 당시, 보건복지부 방역 담당자가 언론에 보도하여 국민들에게 끓인 물을 먹도록 홍보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자 장관이 일본 수산물 수출길이 막힌다는 질책을 하였다고 합니다.

현대국가의 존립 이유와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21세기 선진국 여부의 기준은 GDP가 아니라 국가가 얼마나 국민의 안전과 생존권을 잘 보호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국가적 재난 대처에서는 정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모든 전철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사회의 강력한 공동체주의 전통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제가 낙향하여 거주하고 있는 무주군 설천면 불대마을은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 마을입니다. 최근 마을 이장이 말해주길, 작년에 마을에 치매에 걸린 노인이 나물 채취하러 산에 들어갔다가 실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전 마을 주민과 군수, 군 직원, 인근 부대 군인까지 동원되어서 노인을 찾기 위해 험한 산을 온종일 헤맸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근 군 주민이 발견하여 가까운 병원에서 보호하고 있어서 한바탕의 소동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찾기 위해서 온 군의 행정력과 마을 주민들이 동원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공동체주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가 지속 발전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 공동체주의 사상은 확산 발전되어서 인류 공동체주의 사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면에서 코로나 19 사태는 건강한 인류 미래 발전에 강력한 예방 주사입니다. 

※ 권호근 선생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모교에서 예방치과학교실 초대 주임교수, 치과대학장, 치의학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했다.
이 글은 퇴임과 함께 출간된 ‘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참윤퍼블리싱)’에 실린 내용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매월 선별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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