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23) 틀니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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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23) 틀니이야기 3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0.11.02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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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 박진호

같이 일을 하는 젊은 의사 B가 푸념하듯 이야기를 한다. 자기 생각엔 Dentist가 ‘의사’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한다. Dr. B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다음 진로로 의사를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이 눈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치과의사가 제일 깔끔해 보였다고 한다. 

치과의사가 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자기는 처음 생각한 그런 모습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꺼낸다. 그런 말을 하는 이 젊은 친구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워 보인다. 나도 이 생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한 기억이 났다. 

미국식 표현 중에 Dentist를 장난삼아 비하해서 부르는 별명 중에 ‘Tooth Carpenter’라는 말이 있다. Dentist가 치아를 깍아서 치료하는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치아를 깎는 목수라는 이 표현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뼈가 있다.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 본연의 모습보다는, 하루 종일 치아만 깎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환자들과 대면해서 대화하는 시간이 극히 짧다. 우리에겐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큰 병원에서 재활 쪽에 있는 우리 와이프는 하루 종일 환자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그 대화가 치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 입술이 부르트기까지 한다. 우리와는 완전 반대의 그림이다.

우리는 짧은 진단 후, 일단 치료가 시작되면 환자들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모든 에너지를 환자 입속에 집중하는 동안 환자와의 교감은 멀어진다.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작고, 어떤 때는 잘 보이지도 않는 상한 치아들이다. 그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 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제일 흔한 Resin 치료 하나만 해도 음식물이 끼지 않게 옆의 치아들과의 tight한 proximal contacts을 만들어 내는 것도 어렵다. 거기에 natural한 치
아 고유의 anatomy를 생각해 mesial and distal marginal ridge와 cental groove를 재현하려면 에너지는 금방 소진된다. 새로 만든 앞니 크라운의 색깔이 약간만 차이가 나면 우리는 금방 방전이 되고 만다. 

우리에겐 환자와의 교감이라는 것이 모두 작은 치아 하나하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니만큼 다른 의사들에 비해 좀 더 특수한 형태를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매일이 이렇게 반복되다 보면 Dr.B처럼 우린 좀 더 특수화된 technician에 가까운 것 같단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거기에 이 치아 하나에 따라오는 비즈니스 측면도 같이 생각하게 된다면, 또 한 번의 twist가 따라온다. 좀 더 나은 치료방법, 좀 더 나은 결과, 좀 더 비싸지는 치료비, 좀 더 risk가 적은 치료, 그러다 보면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만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치통은 다른 통증에 비해 neurophysiology가 확연히 달라 그 통증의 intensity가 특별하다. ‘I'd rather give birth to a child than having root canal.’ (신경치료를 하느니 애를 하나 더 낳겠다.) 하는 말은 이미 상용구가 되었다. 하지만 치과치료가 그 작은 치아들과 그 통증에만 국한되어 있을까? 

치과의사는 Life threathening 상황은 아니라고 해도 환자들의 Life Style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그들에게 일상을 다시 찾아 줄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clinician들이다. 우리의 일하는 환경(스케줄이나 비즈니스 측면)이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위로를 주는 일에는 집중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의사 본연의 의무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픔을 환한 미소로 만들어주고, 그로 인해 감사받 고 또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하는 매일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의사가 될 수 있다. 충치를 넘어서 첨단 과학이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오직 인내와 친절로 끝까지 감당해야 하는 틀니 치료가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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