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21)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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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21) 변명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1.02.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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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를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치과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소독제와 약품 냄새가 그 이유다. 그 냄새를 ‘치과다움’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향기로 ‘향기마케팅’을 하는 치과가 많아지고 있다. 특유의 ‘치과 냄새’가 환자에게 불안과 공포를 가중한다고 하니 치과에서 냄새를 컨트롤하는 것도 이제는 중요해졌다.

향수의 쓰임은 지금으로부터 4~5천년 전 신과의 교감을 위해서 처음 사용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주로 이성을 유혹하거나 불쾌한 냄새를 없애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더 향기롭고 감성적인 향을 위해서, 애정, 성욕을 자극하는 향기를 위해서 조향사(Perfumer)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향수 제조로 유명한 유럽의 조향사들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그 성분과 제조비법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이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향수’하면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사실 프랑스 향수는 이탈리아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탈리아의 조향사들은 모두 비밀통로와 비밀의 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제조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지만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가인 메디치 가문의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 왕실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부터 향수 만드는 비법이 프랑스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졌던 이런 향수도 이제는 그 제조법이 많이 공유되고 노출되었다. 미국의 환경단체 ‘안전한 화장품을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sale cosmetics)’에서는 지속해서 향수의 화학성분을 분석하고 호르몬을 교란하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의 내용을 지속해서 발표한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는다면 더는 비밀로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환경단체의 단순주장이라고 보기에는 과학적인 주장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깨지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정보를 공유하고 유사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모임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도 깨지고 있다. 일부 소비자는 전문가 수준의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반박한다. 제품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이미지, 제조공정, 개인의 건강과 연관성, 사회환경, 환경오염 등 연관되는 분야도 많아졌다. 그저 보는 눈이 아닌 전문적으로 응시하는 눈이 너무 많아졌다. 기업의 영업비밀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가고, 투명성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더 신뢰를 얻고 경쟁력이 있는 시대인 것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의료지식의 전문성은 습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의료정보의 비대칭성은 강하게 남아있지만 예전보다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 약물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진 환자에게 어설프게 약을 설명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잘못 알았던 약물도 있었지만 다시 공부하면서도 그 환자가 말했던 깊은 내용에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다. 이제는 일부분에서는 대칭적인 의료지식을 갖춘 환자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환자가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리 하면 설명, 나중에 하면 변명
20여 년 전 교수님 진료 시간에 환자가 이런저런 아는 척을 많이 하자 하신 말씀이 아직 기억난다. 
“그렇게 아는 게 많으신데 치과대학 들어가셔서 마저 공부하세요. 그럴 거 아니면 내 말대로 하시고.” 이런 대화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의료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했던 시기다.

지난달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소비자연맹, 경실련, 환자단체연합회 등 5개 시민사회단체와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 제5차 회의를 개최했다.
‘의료소비자 알 권리와 선택권 강화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이번 논의에서 시민사회단체는 의료소비자 결정권 강화를 위한 정보제공 체계 구축, 코로나19 이후 국민 인식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비급여 관련 정보 접근성 강화, 국가통합의료정보센터 설치, 환자 질환 및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 설명의무, 행정처분 의료인 이력 공개, 진료기록 열람 또는 사본발급 기간 명시 등을 복지부에 제안했다. 이렇듯 환자의 요구는 이제 많은 단체를 통해서 집단으로 제시된다. 의료정보의 대칭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의료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국민건강과 복지에 맞춰져 있다. 의료인으로서는 늘 희생을 강요당하는 듯 보이지만 국민의 관점에서는 다를 수 있다. 의료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정부의 개입을 늘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이유는 바로 정부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을 해소하는 방향성은 이상하게도 늘 의료인과의 마찰을 빚는다. 정부도 의료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의료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우리나라처럼 공공의료가 약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공공의료의 기반을 만들어 놓지 않고 의료인을 공인처럼 ‘사용’한다. 국민도 의료인의 역할에 ‘덕분에’로 보답하는 듯 보이지만 일종의 ‘의존성’ 멘트로도 느껴지는 이유도 모두의 입맛에 맞는 정책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의료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는, 환자(보호자)와 의사(의료기관) 사이에 정보의 양이나 질이 불균등하게 분포함으로써 나타나게 된다. 즉 의사의 정보가 지나치게 어렵고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개원의로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 허무하게도 단순하다.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을 잘하는 것이다. 

치과에서 흔하게 야기되는 과잉진료의 문제도 이런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환자나 그 보호자들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증세나 치료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말이다. 상세하게 설명을 해도 그 내용이 맞는지 검색해서 알아본다.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들은 공급자들에게 이렇듯 끊임없이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공급자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적시에 제대로 제공해주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공급자들에 대하여 불신의 태도를 보이게 된다. 
여기서 ‘적시(適時)’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료소송 대부분이 고지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일어난다. 미리 하면 설명이지만 나중에 아무리 설명해도 그건 변명일 뿐이다. 


김동석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치과를 읽다>, <치과영어 A to Z>,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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