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5) 지붕 없는 성 크리스토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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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5) 지붕 없는 성 크리스토프 성당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1.08.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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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마인츠시가 나옵니다. 마인츠 시는 종교개혁의 숨은 공로자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도시로서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는 곳입니다. 

수년 전 7월 유럽우식학회 참석차 코펜하겐에 갈 때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관계로 마인츠 시에 잠시 들렸습니다. 

방문한 날이 월요일이라 박물관이 휴관한 관계로 아쉽게도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보지 못하고 색의 마술사라는 샤갈이 말년에 제작한 스테판 성당의 푸른색 스테인글라스를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기차 출발 시간이 남아서 우연히 들른 성 크리스토프 성당은 멋진 설치미술작품이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독일 성 크리스토프 성당의 외관
독일 성 크리스토프 성당의 외관

오사카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라는 유명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가 교회 신자들에게 교회 설계 의뢰를 받았는데 제시한 건축비가 너무 적어서 지붕 없는 교회 설계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지붕이 없는 설계안을 본 신자들이 황당하여 항의를 하니까 안도 다다오가 하는 말이 비오면 우산 쓰고 예배보고 추우면 옷 두껍게 입고 예배를 보면 되지 지붕 없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건축비를 더 모금하여 지붕 있는 교회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을 때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성 크리스토프 성당을 보았을 때 안도 다다오가 얼마나 멋진 발상을 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안도 다다오가 지붕 없는 교회를 설계한 것은 성 크리스토프 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성 크리스토프 성당은 세계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서 현재 지붕이 없고 성당 벽만 폐허상태로 남아있습니다.

독일의 다른 성당은 2차세계대전 후 거의 원상복구를 했지만 성 크리스토프 성당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폐허 상태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성당 철제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보는 순간 폐허화된 성당건물과 대조를 이룬 푸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성 크리스토프 성당의 내부 모습
성 크리스토프 성당의 내부 모습


순간적으로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종교적인 영성이 느껴져서 한동안 묵상을 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생각대로 햇빛 찬란한 날 또는 눈이나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지붕 없는 교회에서 예배나 미사를 드리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성당 바닥의 추모비에는 ‘죽은 자에게는 추모를 바치고 산자에게는 전쟁 참상의 경고를’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했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어찌하여 아름다운 세상에서 전쟁을 하면서 서로를 죽이면서 파괴를 일삼고 있는가! 성크리스토프 성당은 전쟁 참상을 알리는 최고의 추모공간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대학 시절 영세를 받기 전에 신부님 추천으로 일본 의사 나가이 다카시의 자전 소설 『영원한 것들』이라는 소설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렵게 의과대학을 졸업한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도 하지만 자신은 방사능 연구로 백혈병에 걸리게 되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아내와 재산, 연구 자료 모두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폐허만 남은 회색 도시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만난다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종교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을 주지 않고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믿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영세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호화롭게 건축된 교회나 성당이 아니라 전쟁으로 파괴된 폐허화된 곳에서 전쟁 피해자와 같이 슬퍼하면서존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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