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6)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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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36) Memento Mori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1.09.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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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선생의 월요편지

추석 때면 대다수 한국인들은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성묘하러 갑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성묘를 하면서 조상에 대한 추모 감정보다는 새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의 시인 Quintus Haratius Flaccus(BC: 65-AD:8년)의 시에서 유래된 ‘Memento Mori, Carpe Diem’은 ‘죽음을 기억하라, 내일은 알 수 없으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경구입니다.

현대인들은 평소 죽음에 대해 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생존하기에 급급한 현대인에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불치병을 안고 태어납니다. 기독교에서는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시작과 종말이 존재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항상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서양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한편 불교는 生死一如라 해 삶과 죽음이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신체는 인체 세포의 지속적인 생성과 소멸의 공존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生死一如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을 앞둔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연설 중 언급한 “죽음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는 말은 죽음을 초탈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최고의 명언이라 생각됩니다.

중학생 시절 톨스토이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면서 죽음과 삶의 유한성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농민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기 위해 쉽게 쓴 우화집이지만 톨스토이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귀족 신사는 일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가죽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소설의 주인공인 미하일에게 주문합니다. 그러나 이 귀족 신사가 내일 죽을 것을 아는 천사의 변신인 미하일은 그의 장례식에 신길 가죽 슬리퍼를 만듭니다.

<사람에게 땅은 얼마만큼 필요한가> 라는 단편에는 한 농부는 해가 뜰 때 출발한 장소에서 쟁기로 금을 그으면서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한 장소까지 돌아오면 금 안의 땅을 모두 주겠다는 약속을 듣습니다. 농부는 최대한 넓게 금을 긋기 위해 멀리까지 가지만 결국 해지기 직전 도착지점을 눈앞에 두고 지쳐서 죽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농부가 소유하게 된 유일한 땅은 자신이 묻힌 한 평의 땅입니다. 부자이건 빈자이건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이 묻힐 자리만큼’이라는 것을 이 우화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저승사자가 문밖에서 기다리는데도 재물을 탐내는 어리석은 인간을 질책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 모른다는 점에서 인간과 벌레는 한 치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물 중 인간만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하라리 교수가 언급했듯이 호모 사피엔스는 종교를 만들고 종교 덕분에 지구의 최상위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스티브 잡스가 죽음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고 한 것은 탁월한 명언입니다.


최근에 성묘할 때마다 ‘너도 곧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다’ ‘너에게 필요한 땅은 육신이 묻힐 한 평의 땅이면 충분하니 욕심내지 말고 살라’는 조상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망자에 대한 추모는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산자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성묘하면서 조상님도 추모하고 Memento Mori도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월요편지 가족 여러분 모두 즐거운 한가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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