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치과의사] (1) 여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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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치과의사] (1) 여우 이야기
  • 정우승 원장
  • 승인 2022.01.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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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과의사 정우승

영국의 골치 아픈 치과 얘기는 다음부터 싣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집 뒷마당 나무 덤불 속에 거주하는 여우 가족 이야기부터…^^
 

어느 날 창고에 들렀다가 우연히 창고 뒤 덤불 속에 사는 어미와 서너 마리 새끼들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순간 서로 빤히 바라보다가 그 눈들이 너무 귀여워 돌아섰다. 문득 2년 전 앞마당에서 교배하는 신기한(?)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한 기억이 떠올랐다. 무단 세입자 마냥 매정하게 내쫓을 수도 없고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니 가끔 술 먹고 기분 좋은 날은 특식을 갖다 놓기도 한다. 고기를 먹은 날은 남은 갈비뼈나 치킨도 두고 온다(일설에는 닭 뼈가 목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인터넷에 찾아보니 괜찮다고 하네요). 

가끔은 오래 묵은 과자, 사탕, 최근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선식이며 식사 대용 파우더까지 상자에 두기도 하는데 다음 날 보면 어김없이 가져가 버리고 안 보인다. 
치명적인 단점은 가끔 집주변에 떨어진 여우 배설물의 형언하기 어려운 역겨움과(ㄸ개도 안 먹는다고 함) 밤에 들리는 영역싸움, 부상으로 인한 high pitch 신음소리(처음 들으면 소름 돋는다). 희한한 건 동네 개가 안 짖는다.

여우는 한해 무려 10만 마리가 로드킬로 죽는단다. 원칙적으로 사체는 토지 소유주 몫이라 함부로 치워서는 안 되나 대부분 council이라 반대는 안 한단다. 가장 높은 치사율은 고슴도치, 오소리, 여우 순이다. 사슴만 해도 약 4만여 마리 죽는데(400여 명의 운전자 부상) 한 해 총 동물 1백만 마리가 죽고 한화로 250억 원의 교통사고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동물들이 인간 거주 지역에 공생하는 이유는 아마 강우량이 많아 수풀들이 너무 잘 자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국 온 지 얼마 안 돼 운전 중 도로에 누워(?) 있는 동물 사체를 목도할 때마다 매번 섬뜩하고 안타까운 심경이었는데 이제는 덤덤해져 바퀴에 안 밟히도록 핸들에 신경이 간다.

동네 근처 리치먼드 파크에선 해마다 2월과 11월에 100여 마리의 사슴 culling(먹이 조절과 질병 예방을 위한 개체 수 줄이기 도축)이 일어난다. 그 고기는 공원 근처 펍에서 요리해 판매하기도 하는데 맛은 양념 없이 먹긴 밋밋하고 다소 질기다. 16세기 헨리 8세의 사냥터가 개조된 햄톤 골프장이란 곳엔 사슴이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데, 3년 전에는 티샷한 볼이 사슴 옆구리를 맞힌 적이 있다. 살짝 움찔하더니 끄떡없이 풀을 뜯길래 같이 라운딩한 동료가 다소 경악한 적이 있다.

내친김에 다른 생명체 이야기도 하자면, 영국엔 거미가 의외로 많다. 환경이 깨끗하단 증거라는데… 특히 여름철 사나흘 차를 안 쓰면 백미러 안에 어김없이 쳐진 거미줄을 보게 된다.
 

비 온 뒤엔 특히 민달팽이가 수도 없이 나온다. 신발에 미끄덩 밟히는 느낌은 무척 괴로워 우천 시 밤에 문을 나설 때는 살생하지 않도록 까치발로 다니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 정우승 원장은 영국에서 개업하고 있는 치과의사다. 1988년 졸업 후 교정 수련을 마치고 경기도 안양 평촌에서 8년간 진료하다 2002년 도영, 2006년에 영국 런던 남부 한인타운 뉴몰든에서 iNE Dental Clinic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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