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치과의사] (2) 개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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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치과의사] (2) 개원의 추억
  • 정우승 원장
  • 승인 2022.01.30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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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료를 하고 있는 곳은 1930년대에 벽돌로 지은 2층 단독 주택이다. 2층에서 살림을 하고 1층 치과까지 출·퇴근 약 10여초 소요된다.

Greater London의 Kingston 구청에 속한 New Malden이란 동네로약 8만 명이 사는 한인 밀집촌이라 뉴말동이라 부른다. 이 주택은 한때 유아들 보육원(nursery)으로 사용된 흔적도 있다.

간난신고 끝에 시험을 모두 통과 후 개원 자리를 보러 다닐 때, 가정집에서 치과 간판을 소박하게 걸고 운영하는 모습이 의외로 눈에 많이 띄어 그야말로 가내 수공업(?)이란 용어가 딱 어울리는 친근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한국이든 여기든 인파가 오가는 상가에서의(High Street이라 부름) 개원을 가장 선호하는 듯하지만….

이 집은 마당이 꽤 넓고(1/4에이커=약 1,011.7㎡) 건평도 커서 교민 한인회 부지로 흥정 중이다가 결렬된 주택이다. 한때 A R Freitag이란 독일인 마취과 의사가 1940년대부터 살다가 1980년대 전후 여기서 타계한 걸로 들었다.

그렇다고 주택가 원하는 곳에 어디든 허가 내주는 건 아니다. 길모퉁이 집이 선결 조건인데 주민들에게 미리 편지로 공지를 하고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 반응을 살핀 뒤 최종적으로 다수의 카운슬 위원들의 표결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길 건너에 기존 치과(Malden dental care)가 자리 잡고 있는 터라 새로운 치과가 비집고 들어갈 구실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지역 한인들을 위한 치과의 필요성, 영어로 치아 통증이나 증상 표현의 난해한 점을 적어 연판장을 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고 교민 약 100여명 이상의 이름과 사인을 받으러 다녔던 추억이 떠오른다. 2006년 초 운명의 공청회 저녁 길 건너 치과로부터 파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인이 유일하게 열띤 반대 의견을 펼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속으로 꽤나 야속했으나 허다한 장소 중에 하필 자기 치과 건너편에 오픈을 한다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을 법하다(그 치과는 주택의 1, 2층을 전부 개조한 group practice이었다).

우리 쪽에선 건물 1층을 치과로 개조를 도와주던 건축사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Korean들을 위한 치과가 필요하단 점을 변호사 마냥 자기 일처럼 어필해 주었다. 나중에 아내로부터 들은 얘긴데 그때 엄청난 긴장감에 눌려 있을 때 누군가 어깨 위에 손을 얹어 주더라는 초자연적? 신비스런 경험을 겪었다고 한다(공청회가 열린 곳은 동네 교회였고 아내 뒤엔 아무도 없는 빈 자리였다. 4살, 8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사전 조사도 거의 없이 39세에 도영해 시험 보느라 무소득 상태로 4년을 보낸 가장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던 처에겐 개원이 그만큼 절박했을 듯…).

어렵사리 7:2의 표결로 승인받고 2006년 4월 1일 바야흐로 대망의 오픈을 하게 됐다.

후일담은 벨기에 브뤼셀 치대를 졸업한 나보다 5년 연상의 독일 출신의 한인 여자 치과 선생님이 4개월 먼저 인근 동네에 개원하셔서 Korean들은 난데없이 2개의 한인 치과의 탄생을 보게 된다.

※ 참고로 무소득 기간 중 현 대한악안면레이저치의학회 회장님의 잊을 수 없는 혜존이 있었음을 밝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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