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50) 유영모, 함석헌, 김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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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 (50) 유영모, 함석헌, 김흥호
  • 권호근 교수
  • 승인 2022.11.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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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 선생과 함석헌(1901~1989) 선생은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철학대회에서 한국 철학계가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선정한 분입니다. 유영모 선생은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학생 때 선생님의 학계 수제자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김흥호(1919~2012) 교수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김흥호 교수님은 제가 예과 2학년 재학 당시 기독교개론을 담당하시던 교수님의 안식년으로 인해 대신 강의를 하러 오시면서 만나게 된 분입니다.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을 들라고 하면 저는 김흥호 교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대학이므로 기독교 사상을 접할 기회는 많지만 동양사상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으므로 동양사상을 강의하겠다고 하시면서 기독교 개론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을 한 학기 내내 강의하셨습니다.

 

당시 노장사상과 선불교 강의는 저에게는 큰 지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선불교의 108 공안(화두)을 정리한 벽암록 강의는 이성적이고 과학적 사고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였던 저에게 이성적 사유를 뛰어넘는 직관적 사유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一日一食하시면서도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강독을 하시는 것을 보고 감탄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는 스승이 있다고 하면서 자주 스승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多夕 유영모 선생입니다.

 

다석 선생은 기독교 사상가이지만 동양의 儒彿仙 사상에 통달하셨고 처음으로 두 사상의 통합을 시도한 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세계철학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유영모 선생은 정인보, 이광수 선생과 함께 당시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던 분입니다. 오산학교 학생이던 함석헌은 오산학교의 교장이던 유영모 선생을 만나서 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흥호 교수님은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이광수와 정인보 선생의 소개로 다석 선생을 만나게 됨으로써 평생 사제의 인연을 맺습니다. 김흥호 교수님에 따르면 다석 선생은 평생 항상 걸어다니고 기와장을 베개로 나무판 위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주무셨다고 하니 道人 같은 분입니다.    

多夕의 의미도 하루 세끼를 저녁 한끼로 해결한다는 뜻으로 一日一食을 하신 분입니다. 함석헌, 김흥호 선생님도 스승을 본받아 하루 일일일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톨스토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다석 선생은 톨스토이의 인류사랑과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하신 분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동경고등사범을 졸업하고 다석 선생의 추천으로 오산학교 교사가 됩니다. 그러나 1945년 신의주 반공 학생운동의 배후로 지목받아 옥고를 치룬 후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서 월남합니다. 1980년대 사상계 주간과 <씨알이 소리>를 발간하여 민주화 인권운동 지도자로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다석 선생은 일반 백성을 씨알이란 용어로 사용하였는데 함석헌 선생은 이 말을 차용하여 생각하는 백성이어야 잘 산다는 의미의 <씨알이 소리>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당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유영모, 함석헌, 김흥호 선생의 공통점은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자유롭지만 종교의 틀을 뛰어넘은 道人같은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영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떳떳하였고 경건한 지행합일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는 드뭅니다. 좋은 선생이 좋은 학생을 만듭니다. 耳順을 넘기고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학창시절 선생님들을 회고해보면서 나는 선생으로서 그간에 제대로 역할을 하였는가 생각해보면 현재의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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