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병(病)을 보는 시선(視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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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병(病)을 보는 시선(視線)
  • 김동석 춘천예치과 원장
  • 승인 2022.12.02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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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저에게로 오는 눈이 비단 하나나 둘일까마는 기집은 바투 옆에서 하도 말끔히 저를 바라다만 보고 섰는 한 앙징스런 초립동이가 귀엽기도 하고 좀 장난하고 싶은 생각도 났던 모양 발씸발씸 보조개 있는 볼대기로 연방 웃으면서 - 그 하얀 이 속에서는 노오란 금니가 반짝거렸다. - 그러면서 앞으로 가까이 다가 나오더니
“초립동이, 내가 그렇게 이뿌?”
하고 갸웃 얼굴을 들여다본다.

- 채만식 『여자의 일생』 중

 

이 소설이 발표된 1940년대에 치과 치료는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는 6~7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그때까지는 흔히 말하는 머구리(불법치과시술자)들이 판을 쳤다. 당시 치과 치료를 받고 금니를 해 넣은 사람은 대단한 부유층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시집온 며느리 입안의 금을 보고 ‘혼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위 작품에서 반짝이는 금니를 여자를 묘사하는 데 사용한 것은 그런 시대적인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 금니로 보이는 입안의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대용 합금인 ‘산플라티나’가 개발된 연도는 1933년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가 썩는 것은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이가 썩었으니까. 하지만 이를 해 넣는 사람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이가 썩은 것이 부끄럽기보다는 이를 해 넣은 것이 부러웠을 뿐이다.

 

자랑할 수 있는 병?    

자랑할 수 있는 병은 없다. 하지만 병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을 준 사람들은 존재했다. 

예를 들면 결핵에 걸린 예술가들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최남선, 이광수, 이상 등이 그랬다. 감염병인 결핵을 예술적 감수성과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가 얽힌 병으로 묘사했다. 감염병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해석을 한 이유는 결핵이 ‘기력이 쇠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남다른 감수성으로 단기간 내에 극심한 에너지를 소모하여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다. 

이러한 예술가의 속성은 단기간 내에 극심한 에너지 소모를 유발하게 되어, 기력이 부족한 것이 예술가들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민을 자아내는 죽을병에 걸린 가냘픈 소녀의 병명은 ‘백혈병’ 같은 것이다. 매독이나 임질 같은 성병에 걸렸다면 가냘픈 소녀의 이미지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짐작건대 병에도 인식되는 긍정과 부정의 요소가 다분하다.

치과 질환을 보는 시선

치과의사나 치과위생사의 직업병 중 하나는 남의 치아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 냄새에 민감하고, 거무스름해 보이는 앞니가 눈에 거슬린다. 이를 해 넣지 않은 곳이 보이면 그 사람의 덴탈 아이큐를 낮게 매기고 경제력을 의심하기도 한다. 치과 질환이 심해 빠진 이가 많고 스케일링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동안 살아왔던 그 사람의 인생도 그 잣대에 맞춰서 상상하기도 한다. 

치과 종사자들의 눈에 민감해 보여서 그렇지 치과 질환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가로 인식되는 치과 치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는 누구나 앓는 충치나 풍치의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치과 질환은 대부분 ‘게으름’이 유발하는 경우가 많고, 그 사실을 환자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많은 환자가 자신의 입안을 보여주기 꺼리고 부끄러워한다.

 

치과 지식과 삶

부모를 잘 만나서 시집을 갈 때 금니를 7개나 했다고 자랑하던 할머님이 생각난다. 그 금니 덕분에 자신은 부잣집 딸로 인식되었고 시댁에서도 자신을 무시 못 했다고 말하던 분이다. 그 자랑하던 금니가 대부분 ‘산플라티나’로 확인되어서 이 사실을 말씀드릴까 말까 하다가 말하지 못했다. 다행히 치아에 붙어있어서 달라고 안 하셨지만, 이 사실을 알면 적지 않게 실망하셨을 것이 분명했다. 그 치아로 잘 씹고 사셨으니 됐다. 지금 와서 달라질 것도 없다. 하지만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의 심적인 변화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치과적인 지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거나 낮게 만드는 것에는 분명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에 치과 지식, 즉 덴탈 아이큐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삶이 그 사람의 입안에 영향을 미쳤다면 앞으로 입안이 그 사람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치료의 고통이나 씹는 즐거움, 수명의 연장, 삶의 질 등 할 수 있는 모든 이유를 대서라도 치과 지식을 넣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우린 알기 때문이다.

 

치과 지식의 혼돈을 초래하는 자

‘금’과 ‘산플라티나’는 확인할 수 있다. 기술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던 시절에는 재료의 차이가 극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니’ 가격의 임플란트와 ‘산플라티나’ 가격의 임플란트는 비교하기 어렵다. 임플란트 시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올바른 진단에서부터 환자에게 맞는 시술 방법의 선택, 골이식의 여부, 보철물의 선택과 교합, 유지 관리 등 이 모든 사항을 제대로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 제품과 재료가 같은데 왜 비싼 곳을 가느냐고 싸게 해주는 자신에게 오라는 홍보를 버젓이 치과의사가 하고 있다. 가격으로 환자를 유인하는 행위는 의사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일이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전달하려면 더 고가라고 선전해야 하지 않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가격의 하락으로 많은 사람이 좋은 시술의 혜택을 받게 되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끝이 불길한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치과 지식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병이라고 결핵을 얘기했던 시절처럼, 치과 질환이 고뇌와 번민의 결과라고 인식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적어도 환자가 ‘금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시절처럼 그 치료를 받은 사람이 뿌듯함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산플라티나’를 해주던 치과불법시술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불법이지만 이를 해 넣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지식의 혼돈을 초래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런 마음이 있다고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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