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우현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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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 우현산방
  • 권호근 학장
  • 승인 2023.05.0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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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불대마을은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마을입니다. 민주지산을 주산으로 하고 정면으로는 덕유산 향적봉을 안산으로 하는 삼태기 같은 지형으로 풍수지리적으로 풍광이 수료한 명당 터입니다. 불대마을에서 산속으로 1km 정도 올라가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한동안 기도생활을 하던 10평정도 되는 흙집이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은퇴하고 흙집을 수리 후 又玄山房이라 당호를 정하고 산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현은 도덕경 1장에서 道를 설명하는 玄之又玄 “그윽하고 또 그윽하다”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는 그윽한 사람이 아니지만 제가 있는 무주 산속은 그윽한 곳이라 우현산방이라고 당호를 지었습니다. 소백산을 차경으로 하는 영주 부석사 풍광도 장관이지만 덕유산을 차경으로 하는 우현산방 풍광도 장쾌합니다. 겹겹이 펼처지는 덕유산 산너울을 바라보면 아침 저녁으로 신비스런 생각이 듭니다. 
무주에 오게 된 것은 은퇴 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 생활을 하라는 어머니의 유언도 있었지만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인생 2막 삶은 자연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머니 유언대로 기도 생활은 못하고 텃밭을 일구고 무주구천 계곡길을 트래킹하거나 독서와 클래식 음악감상 등으로 한가하게 소일하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 전에는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하는데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으로 인해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텃밭 가꾸기 위해 잡초 뽑기와 매화나무 가지치기 톱질을 하다가 깨달은 것은 마음을 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톱질하거나 잡초를 뽑다 보면 무념무상 상태로 한두 시간이 그냥 지나갑니다. 원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서 세월의 흐름을 한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중 생활하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대화와 표현의 중요성입니다. 산속에 있다 보면 종일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묵언을 하게 됩니다. 처음 삼사일은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 5일 정도 되면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어집니다. 독일 표현주의 다리파 창시자 키르히너는 표현 욕망은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선언합니다. 
내면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사회와 개인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은 것이므로 내면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다른 호모 종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제치고 최종 승자가 된 이유로 측두엽 발달로 인한 언어 소통 능력을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대화를 통한 소통과 표현은 인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묵언은 정신 수양에는 도움을 주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은 필수적입니다.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대화와 소통 능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덴포라인의 월요편지도 저와 덴포라인 독자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4년간 연재해왔던 월요편지를 이만 끝내고자 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덴포라인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귀한 지면을 제공해 준 덴포라인 윤미용 발행인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 우현산방에서  권 호 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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