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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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 김남윤(김남윤치과) 원장
  • 승인 2014.12.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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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윤(김남윤치과) 원장

 

갑작스런 한파와 아침과 한낮의 심한 일교차에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가뜩이나 무거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더 무거워지고 급기야 기침과 콧물에 독감이 찾아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확실히 치과 치료에도 집중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은근히 직원들이 걱정하며 휴식을 권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이 시국에 쉬어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이 일이 내 일이다보니 좀 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력을 집중해서 또 출근한다. 국가대표 축구의 후반전 말미는 늘 체력보다 정신력 싸움이라는데 요즘 내 사정이 그런 것 같다. 늘 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같은 일을 하고 촘촘히 채워진 일정대로 움직이지만, 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마치 자신의 회사일 같다며 드라마 한 꼭지에 울고 웃는다는, 윤태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다.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던 고졸 출신이 대기업 상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가 좌충우돌 하는 회사생활이 한판의 바둑과 같다며 자주 비교한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직 신입직원이 된 주인공의 독백은 늘 쓸쓸하고 다양한 캐릭터의 상사들은 인간의 군상(群像)을 보여준다.

제목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은 조치훈 9단이 한 말이다. 주인공 장그래가 예의 그 쓸쓸한 표정으로 회사 옥상에서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쳇바퀴 돌듯 일상적인 회사원의 생활과 서류작성과 보고서에 열 올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내뱉는 독백의 일부다. 프로기사 지망생이었을 때 수없이 뒀던 바둑…….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나에겐 전부인 바둑. 그렇게 승부사의 세계로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조치훈 9단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처절하게 치열한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돌아온 답은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나 하나쯤 어찌 살아도 사회는, 회사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일이 지금의 나이기에. 나의 정체성이고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치과, 그래도 치과. ”내 아픈 몸을 이끌고 달래가며, 치아 하나 발치하거나 전력을 다해 살려도 사람의 생명에 아무 영향도 상관도 없고 지장도 없는 치료, 하지만 나에겐 전부인 치과치료. 내 정신력과 집중력을 다 바쳐야만 제대로 끝나는 치료. 0.01mm. 눈에 잘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남들에겐 아무런 상관없는 길이요, 넓이요 틈이지만, 나에겐 10μ(micro meter). 큰 차이고, 결국엔 설마 했던 그 차이 때문에 성공과 실패로 길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치과치료는 치열한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채워진 정직한 치료이다.

불법네트워크 치과의 저가 공세 이후에 많은 아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요즘은 임플란트는 물론이고 교정치료도 저공비행을 하고있다고 한다. 보도채널과 정보제공 프로그램에서 <착한가격>을 세뇌시키고 있어서인지, 소비패턴의 최우선 순위가 가격이 돼버린 지 오래다. 박리다매가 경영의 화두고, 단기간에 성과와 결과물을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 개원하는 일부의 경우 무리수인지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기득권의 질서와 경쟁하기 위해 또한 단기간에 경제적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차별화된 저가 공세와 불법과 탈법을 교묘히 넘나드는 공격적인 광고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솔직한 속내에는 나도 빨리 좋은 차를 타고 싶고, 넓은 집에서 살고 싶고, 럭셔리(Luxury)한 삶을 살고 싶은 저급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그래봤자 치과의사, 그래도 치과의사.”

365일 연중무휴 야간진료까지 해가며, 환자의 체어타임(Chair Time) 줄일 수 있으면 어떤 편법이라도 동원하며, 불법위임진료를 남발해도, 그래봤자 큰돈을 벌지 못하는 게 치과의사다. 사람의 생명과 아무 영향이 없고 지장이 없다지만, 제대로 치료해서 잘 끝나면 그래도 보람은 큰 수술해서 사람 살린 것과 같다. 환자의 삶의 질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나도 만족하고 환자도 만족하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좋은 방향으로 머리를 쓰면 긍정적인 사고가 저절로 가능하지만, 나쁜 쪽으로 머리를 쓰면 세상이 온통 회색빛일 것이다. 그렇게 많이 벌어서 누구 갖다 줄 것인가?

나는 누군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주인 손에 발이 묶인 가마우지 신세일 것이다. 하루는 길게 느껴지지만, 일주일은 금방 지나가고 어느 덧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한 해가 지나고 다른 새해가 올 때에 미처 반성 없이, 성찰 없이 지나간 해가 더 많았던 것 같다.

12월이다. 그래봤자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이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일이지만, 그래도 세모(歲暮)고. 새해다. 성찰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질 때다.
 

김남윤 (김남윤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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