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필리핀 의료봉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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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필리핀 의료봉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
  • 박정훈(부천 큐프라임치과 원장)
  • 승인 2015.10.19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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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부천 큐프라임치과 원장)

 

‘갈릴리해’와 ‘사해’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헬몬산으로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갈릴리 해로 모이고, 다시 그 물줄기가 요단강이 되어 사해로 이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두 바다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갈릴리 해는 그 풍요함으로 인해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는 반면, 사해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까지 둥둥 떠다닐 정도로 염분이 높아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원도 같고 하나로 연결된 이 두 바다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삶과 죽음의 대조적인 모습으로 형성되었을까?

 

처음 개원을 하며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개원을 하려면 '사업자 등록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그리고 수련을 받으면서도 나는 의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지 사업자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어쨌든 사업자등록증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개원을 하고 보니 어느덧 내가 의문으로 생각했던 ‘사업자’란 명칭이 점점 내 모습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매일 신환 수를 세고 있고, 이 환자는 보험환자인지 비보험환자인지 구분하며, 하루 매출, 한 달 매출을 따지고 그리고 직원들의 생산력을 고민하게 되었다.
정말 의술을 펼치는 의료인의 모습은 뒤로 하고 ‘사업자’로서 환자와 병원을 바라보며 더 많은 환자, 더 많은 수입을 쫓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병원을 일주일 동안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선뜻 참여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미 나는 의료인이라기보다는 사업자가 되어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 치과대학에 입학원서를 냈을 때의 기억, 그리고 치과의사 면허를 딴 후 응급실에서 첫 환자를 만났을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며 참가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동식 유닛체어를 빌리고 온갖 진료장비와 기구, 재료를 준비하고 그리고 간호사였던 아내를 병원으로 불러 석션 연습을 시키고 이런 저런 선물도 준비했다.

그리고 과감히 일주일 간 병원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필리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것이 부족했던 만큼 유닛체어를 펼쳐 놓으면 그곳이 바로 진료실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무엇인가 모를 사명감과 행복감으로 깜깜한 밤이 되도록 한명이라도 더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누구도 진료비를 내지 않았지만 “와주어서 고맙다”고 칫솔이며 치약 등을 챙겨 주는 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진짜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아?”
나와 아내는 단지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아주 조금 흘려 내림(flowing, 물 흐르는 듯한) 했다. 이 ‘흘려 내림’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개원을 하고 수많은 진료 속에 늘 사업자의 모습으로 일을 하며 스스로를 가두어 놓기에 급급했다면, 흘려 내린 그 시간만큼 나는 사업자가 아니라 의료인이란 본연에 충실했기에 너무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주심에 참으로 감사했다. 그 후 매년 이 일에 참여해오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인생의 후반전을 디자인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또 다른 흘려 내림(flowing)이 필요한 곳을 찾게 되었다.
치과의사라는 통로는 이 흘려 내림(flowing)을 하기에 너무 좋은 달란트(talent)인 것 같다. 무엇인가 많이 채워야만, 또 준비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저 마음만 있다면, 내게 허락 된 것을 아주 조금 만의 관심과 시간을 통해 흘러내림으로써 나도 그리고 이 세상도 살 수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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