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52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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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52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3.09.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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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약을 처방하려고 하는데 환자가 이야기한다. “지난번 약 때문에 변비로 고생했어요. 부작용 없는 약으로 부탁합니다.” 아마도 지난번 처방한 항히스타민제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셨어요? 다시 잘 처방하겠습니다. 변비를 일으키는 약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러니까 약 안 먹어도 될 정도로 건강관리 잘하세요.” 환자는 자신이 원래 변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신의 변비히스토리(?)를 나에게 말해주었다. 일하면서 바쁘게 지냈던 중년의 시절, 집에 들어가면 유독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따로 자신의 공간을 마련할 여유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집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았다고. 그래서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왜 그렇게 화장실에 오래 있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변비 때문에’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 결과로 진짜 변비가 생겼다고. “원장님은 혼자만의 공간이 있으시죠? 남자는 자신만의 공간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사는 게 지치고 힘들어져. 가족들이 못 해주는 게 있거든. 혼자서 재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부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야전 상의 하나 걸친 아재 한 명이 천막집에 살면서, 꼬질꼬질한 산중 생활을 그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독되어서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쯤 상상한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도 어디 한번 해볼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는 이런 상상의 근간을 에드워드 홀의 '공간학'에서 찾아낸다. 나만의 공간을 찾고 그 공간에서 지내고 싶은 욕망을 '슈필라움(Spielraum)'이라고 정의한다. 독일어로 '놀이(Spiel)'와 '공간(Raum)'을 합친 말이다. 글자 그대로 놀이 공간, 여유 공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힐링 공간으로 보면 된다. 대한민국 중년남성들은 이런 자율공간, 여유 공간이 없으니 산과 바다를 벗 삼아 야전 상의를 걸치고 유유자적 살아가는 자연인이 그토록 부러웠던 것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내 환자에게는 그 공간이 바로 화장실이었고 변비는 그래서 생겼다.

나만의 공간 구축하기
맞벌이하는 부부들이 많아진 현대지만 여전히 집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성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여자들은 집을 '자신의 슈필라움'으로 여긴다. 꾸미고, 닦고, 쓸고. 오롯이 자신의 것에 공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한다. 걸레질 도와주는 남편을 못 미더워하고 다시 한번 더 걸레질하는 것이 여자다. 그런 여성에게 집은 자신의 공간, 즉 슈필라움이 될 수 있다. 남성은 다르게 느낀다. 집을 그저 스쳐 가는 공간으로 느낀다고 한다. 안방은 아내에게, 건넌방은 아이들에게 '점령'당하고, 그저 골방에 틀어박혀 잠만 청하게 된다는 거다. 의사들이 자신의 원장실을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자신의 공간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장실에서의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행복하지는 않다. 그만큼 환자가 없다는 얘기니까.

나는 책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서재를 크게 만들었다. 그곳이 나만의 슈필라움이다.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들을 꽂아놓고, 왠지 들어오기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적어도 그 시간은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심어 놓는다. 하지만 그 공간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에만 나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하고 드라마도 보고 멍때리는 일도 많다. 그렇게 스스로 재충전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나 보다.

현실의 유토피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사회. 그곳을 우리는 유토피아(Utopia)라 부른다. 유토피아는 장소라는 뜻의 그리스어 ‘토포스(Topos)’ 앞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어 ‘우(Ou)’를 붙여 만든 ‘장소 아닌 곳’, 다시 말해 ‘장소 없는 장소’를 뜻한다. 꿈꾸는 곳은 현실에는 없기 때문이다. 1516년에 토머스 모어가 쓴 소설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중세 문학의 파라다이스나 제임스 힐트가 명명한 샹그릴라나 허균이 건설한 율도국, 도연명이 그린 무릉도원과도 사실 모두 일맥상통한다. 종교적으로 천국이나 극락, 신화적으로는 아틀란티스와 아발론 등이 인간이 생각하는 현실 공간을 넘어선 이상향의 세계일 것이다. 

‘일상 공간’과 ‘유토피아’. 미셸 푸코는 여기에 공간의 구획을 하나 더 추가한다. 바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다. 그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상상의 공간이자 현실의 공간이며, 탈주의 공간이자 전이의 공간으로서 차이를 생성하고 통합해낸다. 즉, 상상할 수는 있지만 현실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와는 달리, 우리가 사는 이곳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헤테로토피아인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다른 온갖 장소들에 대해서 일종의 “이의제기”를 하고 그것을 전도시키는 장소다. 푸코는 실제의 장소이지만 모든 것들의 바깥에 존재하는 일종의 “현실의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락방, 인디언 텐트, 거울, 도서관, 묘지, 사창가, 휴양촌 등을 예로 들었다. 환자의 화장실, 나의 서재도 어쩜 이런 헤테로토피아일 수 있겠다.

환자들의 헤테로토피아
치과의사로 이상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마음껏 먹고, 예쁜 치아로 자신 있게 웃고 이야기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덴탈 유토피아, 덴토피아(Dentopia). 건강한 치아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직업적 소망을 반영한 꿈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치과의 문을 높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주 노동자, 독거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등이 그렇다. 몇 달 전 내원한 환자가 생각난다. 무려 6곳의 치과에서 진료 거부를 당하고 내원한 장애인의 엄마가 원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그저 아이의 입안을 의사에게 보이고 진단이라도 받고 싶어서였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그의 저작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환대하는 것의 기초인 “사회적 성원권”이 기본적으로 ‘장소’ 개념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미 식탁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그 방에 당신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초대받지 않았다면 더 복잡하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머쓱하게 서 있다가 민망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앉아있던 사람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의자를 권하고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신은 환대를 받았고 아마 다른 문제가 없는 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환대와 배려로 병원도 소외된 환자에게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꿈꾸던 덴토피아는 어쩜 현실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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