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던 코비드 시대가 지나가고 다시 정상적인 시간으로 돌아와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정신 없이 흘러간다. 암울했지만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2021년까지 덴포라인에 <미국치과의사 박진호>라는 제목으로 오랜기간 연재하다 잠시 휴재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동안 글에 대한 갈증에 고민 끝에 다시 덴포라인에 글을 연재하기로 결심했다. 미국 현지에서 치과를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생생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독자 여러분들이 읽기 편한 글로 소개할 생각이다.
지난 호에서 독일 Eisenach 에 있는 J.S. 바흐 생가 박물관에 있는 그의 초상화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았다. J.S. 바흐의 진짜 유골의 Replica 가 바로 그 초상화들 앞에 전시되어 있고 어떻게 그의 얼굴이 복원이 되었는지 흉상 세 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해골을 그대로 복제해 놓고, 거기에 조각가들이 살을 붙여서 만든 흉상, 마지막은 그렇게 얼굴을 복원시켜 놓은 조각이었다.
그때 만든 해골의 replica를 찬찬히 살펴보니, 그의 치아가 보인다. 같이 갔던 아내는 무심히 지나쳤지만, 내 눈에는 바흐의 치아가 눈에 들어오고 나는 혼자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또 전문 분야가 아니던가...
위의 치아는 거의 다 빠지고 없다. 밑의 이는 몇 개만. 그나마 위아래로 마주치는 치아는 #5와 #27 밖에 없다. 그것도 비스듬히 부딪히고 있다. 거의 모든 음식을 이 치아 두 개로 겨우 씹는둥 마는둥 우물우물 하다가 삼켰을 것이다. 합리적인 추론을 하자면 #5이랑 #27이 남았다는 이야기는 분명 윗 송곳니, #6랑 아래 송곳니 #27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 두 치아는 송곳니라서 상대적으로 제일 오래 가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 두 치아가 음식을 씹는 main chewing force가 되다 보니 그 중에 상대적으로 약했을 것 같은 #6가 흔들려 빠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옆에 붙어 있었던 #5가 남아 있었을 수 있다. 잘 부딪히지도 않는 그 치아 두개가 유일한 occlusion 이라 어떻게든 사용하느라, 분명 얼굴도 비틀어져 있었을 것이다.
복원한 해골은 아래턱이 정상적으로 맞춰져 있지만 그건 의사가 맞춘 이상적인 anatomy일 것이고,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사망 후 Dead Mask를 만들었다면 어금니 없는 양쪽 볼이 움푹 파여져 있었을 것도 분명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Leipzig 에 있는 음악박물관에 가면 Beethoven이 사망 후 본을 떠서 만든 Deak Mask의 replica가 있는데, Beethoven도 어금니가 없어 그의 얼굴 균형이 맞지 않고, 양쪽 볼이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 폭격 때문에 유골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 바흐의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다 빼버리고 잇몸으로 음식을 해결했다면 차라리 편했을 것인데, 남아 있는 치아가 아까워 그렇게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틀니 만드는 기술도 발달되지 않았을 것이니.. 아마 생애 마지막 10여 년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식사 때마다 고통이었고, 음식을 먹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의 초상화 스토리와 치아 이야기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의 본가 박물관에 와서야 알았고, 나처럼 ‘이빨쟁이’가 왔어야 알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사실이라 더 흥미가 있었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이렇게 얻어지는 게 많은 건 덤이라고 할까? 바로크 음악의 끝판왕이었고, 모든 음악가들의 교과서였던 그의 위대한 뒤에 있는 비밀스러운 사실을 알아채는 재미만 하더라도 이번 여행은 충분했다. 이제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그의 치아가 생각날 것 같다.
박진호 원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다. 부모님을 따라 1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대학을 나와 치과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州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E메일은 <smile18960@gmail.com>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