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치과의사] Bethlehem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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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치과의사] Bethlehem Star
  • 박진호 원장
  • 승인 2024.01.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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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피스가 있는 지역에 옹기종기 작은 동네들이 있는데, 이 동네 이름들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Nazareth, Bethlehem, Lebanon, Emmaus. 모두 다 성서에 나오는 친근한 이름들이다. 한국말로 번역을 하자면, 나사로, 베들레헴, 레바논, 엠마오이다. 이 동네에 가면 뭔가 성스러운 분위기가 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자그마한 동네들이다. 일차 이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철공장들이 이곳에 많이 세워져서 한 때 아주 분주한 곳이었지만, 지금 그 공장들은 다 들 문을 닫았고, 가끔 영화촬영 장소가 되어 작고 평온한 동네로 변화해 있다. 

가끔 점심을 먹으러 가는 바로 옆 동네의 이름은 Qukertown인데 미국 이민 역사가 시작될 때 유럽에서 건너온 Quaker 교인들이 모여 살아 만든 동네라고 알려져 있다. 이 동네를 지나 북쪽에 있는  Bethlehem 쪽으로 가려면 큰 언덕이 있고, 이 언덕 꼭대기엔 Bethlehem Star라고 부르는 큰 별 조형물이 있다.

사이즈도 크고 밤에는 불이 들어오는 지라 이 동네의 큰 Landmark가 되어 있다. 이 조형물을 만든 분이 Neal M.이라는 분인데 오랫동안 나와 환자로서의 인연을 만들어 간 분이다.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언제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화제가 되는 Bathelehem Star를 보면 그분이 생각난다. 

워낙 괴팍하신 분이라 치과 치료를 하는 동안 나를 참 많이 괴롭히셨던 분인데, 나를 참 좋아하셨던 정말 꼰대 중의 꼰대 할아버지셨다.  언제나 툴툴거리시면서 내가 정성을 안 들여서 결과가 좋지 않다, 내가 Asian이라 손재주가 좋은 줄 알았는데 나는 예외라는 둥 불평을 늘어놓으셨다.  은퇴 후 스쿨버스를 운전하시며 노후를 보내셨는데 늘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오셔서 아이들 픽업 가야 하니까 빨리 봐달라고 조르기도 하시고,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서 중창단에서 노래를 하는데 지장이 많다고 툴툴대시고.. 그렇게 언제나 시크한 농담을 쏟아부으셨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서 이 병원에 올 수밖에 없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나서 Mrs. Neal이 오피스로 찾아오셨다. 며칠 뒤에 남편의 장례식이 있는데 오늘 앞니가 부러졌다고. 그래서 장례식날이 너무 걱정이 된다고 울상이 되셔서 오셨다. 검사를 해보니 #7이 완전히 부러져 나가고 없다.

이 상태는 쉽게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좀 걸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스태프들이 알려준 비용을 보고 그냥 앉아서 우신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Bethlehem Star라는 지역 명물을 만드신 분이라 넉넉한 집안인 줄 알았는데, 남편에 돌아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창고에 가득히 남아있던 그 조형물을 만들고 남은 조각들 뿐이란다. 그래서 지금은 생계가 막막한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Mrs. Neal의 치아 상태는 좋지 않았다. 부러진 치아 말고도, 앞의 치아들 전부가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태였다. 나를 이뻐라 했던 Neal이 너무 생각이 나기도 해서, 이야기했다. 앞의 치아들을 전부 다 치료하자.

비용이 적지는 않으나 발생하는 기공비만 부담을 할 수 있겠느냐.. 사실 그 말도 쉽지는 않았지만 예상외로 너무 감사해했다. 그날 바로 치료를 시작하고 Mrs. M은 장례식을 잘 치를 수 있었다. 그 며칠 뒤 오피스로 찾아오셨다. 그리곤 내 손을 잡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나한테 줄 돈은 없고, 자기 그림 하나 주겠다고 하면서 본인의 그림들을 소개하는 카탈로그 하나를 내민다. 알고 보니 Mrs.Neal은 화가였다.  

미국 미술사에서 자그마한 자리를 차지하는 New Hope Impressionist라는 그룹이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 New Hope이라는 동네는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인근 강가 마을이 있는데, 한때 거기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고.. 제법 왕성한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마치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그중 한 명이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Mercer Museum, Doylestown, PA에 가면 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웬만한 작품들은 다 팔리고 남은 몇 작품 중 하나 가지라고 한다. 한사코 사양을 했지만 그 중  작은 작품 하나를 픽했고, 내가 없는 사이 포장을 해서 오피스에 놓고 갔다.  

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더 밝아지는 Bethlehem Star를 보면 나를 괴롭히며 즐거워하던 Neal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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