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57회 번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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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김동석 원장의 치과인문경영학 57회 번아웃
  • 김동석 원장
  • 승인 2024.02.08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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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치탐구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학문이 있으니 우리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가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런 분위기와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본지에서도, ‘치과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춘천 예치과 김동석 원장을 통해 인문학의 무대를 치과로 옮겨,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글 | 김동석 원장(춘천 예치과)

내가 아파서 환자가 되어서, 또는 가족이 아파서 보호자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대부분은 소개로 찾아가서 내가 의사인 것을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의학적인 지식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듣고 가벼운 질문 정도를 할 뿐이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지식을 얘기했다가 의학 지식이 부족함을 드러내기보다는 내가 좀 다른 사람보다는 의학 지식이 있을 것이라고 상대가 알고 얘기해 주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의사들끼리는 어차피 잘 돌려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설적인 화법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성’의 영역으로 깊이 들어가면 대립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의사와 환자 사이는 어떻겠는가.
이제 의사의 전문성은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심지어 의사들도 자기보호를 위해 불확실성과 불충분함, 자신들의 무능함을 모호하게 덮는 일도 있다. 환자는 늘 의사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의사라면 그 기대감은 더할 것이다. 그 의사라면 최선의 치료법은 하나라고 말해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의사도 오진(誤診)할 수 있다. 경험이 많은 의사일수록 번아웃 증후군의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실수로 오진할 가능성은 더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번어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은 2019년 WHO 제11차 국제질병분류(IDC-11)에서 ‘구체적으로 업무 환경에 국한되어 나타나며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장 업무 스트레스’로 정의했다. 공식적인 질병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수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만큼 중요한 현상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번아웃 증후군은 소진(exhaustion), 냉소주의(cynicism), 비효율(ineffectiveness)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주로 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① 소진(exhaustion)
지침(wearing out), 에너지 고갈(loss of energy), 쇠약(debilitation), 피로(fatigue)

② 냉소주의(cynicism)
부정적이거나 부적절한 태도(negative or inappropriate attitudes toward client), 짜증(irritability), 이상의 상실(loss of idealism), 거부 또는 회피(withdrawal)

③ 비효율(ineffectiveness)
개인적 성취감 감소(reduced personal accomplishment), 생산성 저하(reduced productivity), 낮은 사기(low morale), 대처 불능(inability to cope)

이런 번아웃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은 업무량의 과다, 통제감 상실, 보상 불일치, 불공정, 커뮤니티 단절, 가치 결여 등이다. 우울과 겹치는 부분이 많으므로 당신이 우울증인 것 같은 소견이 보인다면 오히려 번아웃일 수도 있다.

의사들의 천국이라고 보이는 미국에서도 의사의 번아웃은 일반인보다 2배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번아웃으로 의사들의 약물 및 알코올 중독률, 우울증 및 자살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터엠디(intermd)가 발표한 ‘2019년 대한민국 의사 직업만족도 조사(2019 Medical Doctor Career Satisfaction Index)’에 따르면, 번아웃 증후군의 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조사대상의 82.6%가 “경험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의사는 17.4%에 불과했다. 바쁜 병원에서 일하는 지쳐 보이고 짜증이 많은 의사라면 번아웃이 온 의사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도 있으므로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번아웃의 반대상황을 뜻하는 의미로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가 있다. 
명사로 ‘약속, 약혼’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engage’라는 동사의 의미를 파악하면 그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다. ‘(주의, 관심을) 사로잡다’, ‘(이해심을 갖고) 관계를 맺다’의 뜻이 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to interest someone in something and keep them thinking about it: 어떤 것에 몰두하게 해서 그것에 머무르게 하다’라고 나와 있다. 높은 에너지, 높은 참여와 관여, 그리고 높은 효능감이 있다는 것으로 번아웃 상태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반대가 맞다. 그렇다면 번아웃 상태가 아닌 인게이지먼트 상태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연구 결과는 상황적 요소, 즉 일하고 있는 조직과 시스템이 번아웃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지만, 치료와 예방 측면에서는 개인적인 노력을 지지한다. 개인이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휴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저 쉰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찾아올 테니. 그래서 업무 패턴을 바꾸거나, 대처 전략을 배우고, 사회적 지지를 늘려나가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인지행동치료, 명상, 요가 등 이완 전략을 활용하고, 신체의 건강을 증진하면서 자기 이해를 높여 나가는 것 등을 전문가들은 추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쉬는 휴식은 ‘비워내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다시 잘 ‘채워내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잘 쉰다는 것이 잘 채우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잘 채울 수 있을까? 
위에 추천한 방법들에 더해지는 인문학적인 사고는 우리의 채움에 분명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의료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이유도 모두 우리의 진정한 인게이지먼트 상태가 되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분명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이거나, 병원을 찾는 환자이거나 환자의 보호자일 것이다. 모두 조금만 더 인문학적인 시선을 가진다면 분명 인게이지먼트의 상태로 서로 주의와 관심, 이해심을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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